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위기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생각해 봐야 할 주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기술이 중심에 서고 사람은 도외시되는 그런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건 아닐지요.
세계적 명성의 '와이어드(WIRED)' 한국판, '와이어드코리아(WIRED Korea)'는 기술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고민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대표적 결과물들은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로울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지 준엄하게 질문합니다.
와이어드코리아는 '런칭 스페셜'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체, AR/VR, 블록체인 등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고 또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집중 진단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 편집자 드림
사물인터넷(IoT : Internet of Things)은 유・무선 통신, 센서 기능을 장착해 사람의 개입 없이도 기기 스스로 데이터를 주고 받고 이를 처리해 자동으로 구동하는 환경을 의미한다. 인류는 연결 사회 과정 중 개인정보가 도구화되고, 스마트 기기가 공격과 탈취 위험에 놓인 상황에 대해 우려할 시점에 왔다.
스마트폰, CCTV, 스마트 스피커, 피트니스 트래커가 해커들의 손에 점령당하는 사례는 흔하다. 그같은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통신 환경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개개인의 보안의식 강화에서 시작한다.
IoT는 인터넷 접속을 위한 통신 기능, 정보를 검색하고 가공하는 기능, 사물이 합당한 액션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컨트롤러, 상황을 탐지하는 센서와 액션을 취하는 액추에이터를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의 처음과 끝 목표는 인간의 편의에 있다. 그렇지만 연결되는 것으로 편리함을 누리기 전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
◆ 창조, 수집, 소비 활동을 아우르는 IoT
모든 논의의 시작점은 사물인터넷이 미칠 파급력은 이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가정이다. 이로운 기술을 해치려는 위협은 또 다른 기술로 극복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분석과 비판도 시작되어야 한다.
IoT는 생성과 수집, 소비라는 세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를 만들지 않는 사물은 연결할 이유가 없다. 커넥티드 스마트 워치를 상상해 보자. 단순히 시각화된 시간만 보여주던 시계와 달리 스마트 워치는 수량화한 개인 건강정보 등을 스마트폰 앱으로 보여준다. 인간에게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후 소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인간에게 편리를 제공한다.
물론 그 연결은 선택적이어야 한다. 편리를 해치는 사물과 연결될 의무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오프라인(Off-Line) 상태에 놓이는 것이 가장 손 쉬운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상황을 짚어보자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살고 있다. 건널목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상호 연결된 관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자신과 관련된 데이터를 생성하고, 타자와 연결돼 인연을 만드는 과정은 인간사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이 생성한 정보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조화로움은 민주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의 역할은 상호 간 합의 하에 연결된 기기를 쓸모 있게 유지하는 일이다. 이 조화를 깨는 해커의 위협을 막는 일도 인간의 몫이다. 보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IoT의 큰 얼개는 스마트시티와도 연결돼 있다. 해커로부터 IoT 세상을 지키는 수고는 도시 교통ㆍ에너지 시스템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교통 트래픽 정보를 공유하는 폰 네비게이션이 해커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민주적 질서는 무너지고 도시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노턴의 선임 책임자인 가레스 락 우드(Gareth Lockwood)는 개별 장치에서 시작해 집 전체와 외부로 연결되는 전 과정을 고려해 보안 범위를 넓힐 것을 권고하고 있다.
◆ '별개'이면서 '모든 것'인 속성
우리는 여전히 냉장고, 옷장, 스마트폰, 가정용 보일러, 인공지능 스피커가 연결된 스마트홈 구성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보인다. 이토록 이질감이 느껴지는 개체를 하나로 묶어놓은 IoT 집합체는 해커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공격 패턴은 단순하다. 네트워크 상 IoT 기기 중 가장 취약한 사물을 찾아 봇넷(Botnet)이 파고 들면 된다. 봇은 스팸메일이나 악성코드에 묻어 전파되고 해커는 기기를 마음대로 제어할 권리를 빼앗거나 렌섬웨어 공격을 가해 접속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보안이 취약한 IoT 장치를 타고 다른 장치로 이동하면서 장악력을 높이는 공격은 인터넷 세계를 큰 혼란에 빠뜨린다. 2016년 10월 미국 가정 내 홈 네트워크에 살포된 스팸 메일로 약 10만 개의 가전제품이 한 순간 먹통이 됐다. 컴퓨터는 물론 네트워크 라우터, 스마트TV, 냉장고 등 네트워크와 연결된 모든 물건이 바이러스를 실어 나르는 일에 강제 동원됐다.
보안기업 센리오(Senrio)의 칼톤 부사장은 "IoT 중 '하나의 기기가 왜 중요한가?'의 답은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나의 작은 구멍을 통해 침투한 위협은 도시 전체를 혼돈 속으로 내몰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진다고 경고했다.
스마트홈 실내온도장치를 통해 화력발전소를 장악하거나 스마트 AI스피커나 비디오게임 콘솔을 타고 대사관 네트워크로 파고 든 사례는 실제로 존재한다. 이들 해커들은 IoT장치만 건드리고 보안 기능을 갖춘 기존 PC나 서버는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
적정한 보안 툴을 가동하고 해킹에 취약한 장치 수를 최대한 줄이는 게 대처법이다. 무엇보다 사용자의 노력과 스마트 기기를 생산하는 각 기업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보안업체 아카마이 테크놀로지스(Akamai)의 채드 시먼 연구원은 "미국 내 유통 중인 400개 IoT 모델에서 취약성을 발견해 통보"한 사실을 전하며, "보안 강화를 위한 제조업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초록은 동색' 서로 묶고 묶이는 것의 의미
삼성전자, LG전자, 구글, 애플, 샤오미 등 혁신 기업들은 이미 IoT 플랫폼 사업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 사물인터넷 기업 스마트싱스(SmartThings) 인수 후 통신기능을 탑재한 갤럭시폰, 블루스카이 공기청정기, 패밀리냉장고 등으로 제품 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스마트싱스는 현재 영ㆍ미권 국가 중심으로 월 평균 4천500만명이 사용 중이다.
그 배경에는 사용층이 두터운 커뮤니티 형성, 손 쉬운 확장성과 기업 후광 외 연결 툴이 있다. 삼성은 브로드밴드 사업자나 게이트웨이 업체 등 파트너들이 손쉽게 스마트싱스 허브 소프트웨어를 각 사 기기에 설치할 수 있는 ‘WASH(Works as a SmartThings Hub)’ 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다. 지난 2019년 10월에는 글로벌 AI 스피커 소노즈(Sonos)와 연동에 합의하기도 했다.
2014년 구글도 스마트 온도조절기 업체인 네스트(nest)를 인수했다. 구글은 온도조절기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마트홈킷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홈 허브, AI스마트 스피커 제품군을 확보했다. 구글과 알파벳의 경영 자문인 마르완 파와즈 재임 기간 중 매출이 3배 신장하며 하드웨어 성장기반 가능성을 열었다.
애플 역시 자사 기술력을 기반으로 차량용 운영체제인 카플레이, 웨어러블 기기인 애플워치 등을 선보였다.
아마존도 뒤 늦게 IoT 기반 경쟁에 합류했다. 아마존은 올해 2월 네트워크 제조업체 이로(Eero)를 인수하며 스마트홈 완성 계획에 접근했다. 아마존은 이로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 취향에 한 발 더 다가선 판매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아마존은 올해 아마존 에코(Amazon Echo) 시리즈를 비롯해 아마존 알렉사(Amazon Alexa)를 탑재한 14종류의 스마트홈 신제품을 공개했다.
이처럼 혁신형 대기업들이 IoT 기술에 열광하는 이유는 제품군 확대가 용이해 큰 수익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한 연결 확장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모든 사물에 통신 기능이 탑재될 가능성이 크다. 구매자들의 소비성향은 호환성을 고려해 동일 브랜드를 선호할 확률이 높다. 애플 아이폰 사용자가 아이패드, 아이팟, 애플워치로 제품 사용군을 넓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 IoT는 지원할 뿐, 사람의 인지 능력이 스마트시티 근간
IoT 세상을 부른 기술은 4차 산업혁명 전체나 다름없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드론, AR/VR, 스마트홈 등 기술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더 이로운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이로움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아이들과 관련된 것이다. 초연결 사회 속으로 아이들이 너무 빠르게 편입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생활 침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가 첫번째이다. 교육자와 부모들로 구성된 단체인 커머셜프리 차일드후드(Commercial-Free Childhood)는 "인터넷에 연결된 장난감을 판매하는 회사는 단순히 장치를 판매해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또한 "(IoT 장난감에 내장된 마이크나 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에게서 많은 민감 정보를 수집하고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단체는 목재나 헝겊같은 오프라인과 좀 더 많은 교감을 나누는 것이 정서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IoT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스마트시티를 완성한다는 전제 때문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한 스마트 시티 구성은 전 지구가 처한 에너지ㆍ기후 문제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편 중 한가지다.
전문가들은 2100년경 인구 80%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늘어난 도시 체류 인구를 감내하려면 스마트 인프라는 필수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교통망과 주거지, 폐기물 처리시설이나 에너지 설비 시설을 갖춘 디지털 생태계를 유지하고자 할 때 IoT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테슬라의 공동 설립자 인 JB 스트라우벨은 "공간이 제한된 대도시가 갖춰야 할 것은 스마트인프라에 있다"고 강조했다.
▲샌디에이고의 소리와 빛 감지 스마트 가로등 ▲베를린의 기상상태를 고려한 차량 알림 서비스 ▲런던의 수송용 옥상 드론 포트 ▲신시내티의 인공지능 주차장 ▲시카고의 지하매설물 3D 구현 서비스 ▲펜실베니아의 광섬유 고속케이블망 등 스마트시티의 물결은 이미 본류와 합류한 상태다. 사물 간 연결의 힘은 저렴하고 유용한 기술로 편리를 창출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미트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Z) 교수는 스마트시티 조성은 단순하게 센서 입력이나 제어 시스템 같은 스마트 기술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사람의 인지 기능을 추가할 때 더 나은 도시로 탈바꿈한다고 조언했다.
슈미트 교수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거주할 도시 조성에 참여해 인지 디자인(cognitive design)을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결국 첨단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오감과 인지력을 확대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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