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위기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생각해 봐야 할 주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기술이 중심에 서고 사람은 도외시되는 그런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건 아닐지요.
세계적 명성의 '와이어드(WIRED)' 한국판, '와이어드코리아(WIRED Korea)'는 기술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고민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대표적 결과물들은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로울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지 질문합니다.
와이어드코리아는 '런칭 스페셜'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체, AR/VR, 블록체인 등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고 또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집중 진단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 편집자 드림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은 PC 등장 이후 인간이 고안한 최고의 시청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 게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지금은 어학ㆍ재활ㆍ직업교육ㆍ의료ㆍ쇼핑 등 여러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기술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결합해서 혼합현실(MR·mixed reality)이 나왔고 이 곳에 현실세계를 융합시킨 확장현실(XR) 기술이 등장했다. 바야흐로 가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세상이 됐다.
확장현실은 차세대 통신기술과 만나 또 다른 차원의 주춧돌을 마련하고 있다. 이 기술은 5G 상용화와 함께 초고화질, 초현실감을 담DK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세상'을 소비자들에게 선사할 전망이다.
◆ 현실 고난 이겨내는 새로운 기술
밤안개가 자욱한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는 'MR 운전모드'를 가동했다. 전면부 차 유리창에 증강된 현실이 펼쳐졌다. 10m 앞도 인식하기 어려운 도로를 대신해 깨끗한 전방 시야가 전달됐다. 차량 자동인식(AVI), 차선 유지보조(LFA), 스마트크루즈컨트롤(SCC), 조향 및 감·가속을 수행하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기술과 연동한 MR 플랫폼은 3D 홀로그램 영상을 연출하며 안전한 주행을 유도했다.
혼합현실(MR)로 구현된 이미지를 사람이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은 5G 상용화다. 5G는 대용량 데이터 전송을 가능케 하여 MR과 AR, VR 등 모든 가상의 배경을 모두 현실감 있게 진화시킨다. 자신이 게임 속 주인공으로 등장해 실감나는 플레이를 즐기고, 군사ㆍ비행조종 훈련도 할 수 있다.
가상현실은 의학 분야에서도 빛을 발한다. 수술과 해부 연습에 사용된다. VR 의료 실습은 이미 검증 받은 교육 방법이다. UCLA 의료팀은 최근 정형외과학회 보고에서 VR을 통해 수련을 거친 의대생들이 일반적 임상실습을 받은 학생들 보다 과제 수행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휴스턴 감리교병원 정형외과장인 케빈 바너(Kevin Varner) 박사는 "VR서 훈련 받은 의사의 장점은 실제로 수술실에 들어갈 때 절차적 준비가 잘되어 있다는 점"이라며 "VR 교육이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환자와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바너 교수의 설명처럼 VR은 생명이 달렸거나 금전적 부담 탓에 경험치를 높이기 어려운 분야에서 대안적 경험을 제공한다.
◆ VR/AR은 최고의 영상교육.치유 수단
VR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게임이나 성인물 영상 산업에서나 활용될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각종 교육 분야서 가장 뛰어난 기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머리에 장착하는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인 HMD를 통해 토성의 고리에서 고대 로마 제국의 수로에까지 모든 것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9년 8월 열린 글로벌 AR·VR·MR 콘퍼런스인 XRDC 보고서에 따르면, 900명의 개발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총 33%가 현재 프로젝트를 교육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상 현실 속 교실은 지루한 수학이나 과학 수업, 다큐멘터리 영상에 마인크래프트(Minecraft) 게임과 같은 재미를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VR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상 방식도 바꾸고 있다. HMD로 본 영상 속에서 질병에 휩싸인 지구촌 모처의 현실은 어떤 뉴스보다 치열하고 리얼하다.
유엔과 협력하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미국 영화제작사(Vrse.works)의 공동 설립자인 페트릭 밀링 스미스는 "VR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최고의 도구"라고 설명했다. 데이브 랜야드 SCE런던스튜디오 감독은 "VR의 가능성은 가상환경의 구현과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치의 제공"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보다 실용적인 용도로도 사용 중이다. 알츠하이머 진단에서 의료 데이터 상호 작용에 이르기까지 VR의 혁신은 이어지고 있다.
UCL 바르셀로나 대학은 VR을 통한 몰입형 가상현실 치료 임상을 진행한 결과, 우울증을 가진 15명의 환자 중 9명이 증상 완화 결과를 보였다고 했다. 불안과 우울증을 반복하는 중 지나치게 자기 비판적이었던 환자들은 가상현실 속 아이를 위로하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동정심과 자기 위로를 체험했다.
가상현실 활용이 정신 질환과 신경 손상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 심리학자 알베르트 리조는 가상 현실을 사용한 노출요법으로 이라크전 참전 군인의 PTSD를 치료 중이다. 한국 울산대학교 연구팀은 VR 훈련이 뇌졸중 환자의 신경학적 문제를 돕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밖에 VR은 예술작품과 결합해 또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바뀌고, 식물이나 곤충을 식별하도록 돕는 등 다양한 학습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 혁신기업의 웨어러블(wearable) 디바이스 경쟁
이 기술의 한계는 디바이스 기기 보급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HMD라는 거추장스러운 스마트 글라스를 뒤집어써야 하기에 거부감마저 든다. 이물감을 주는 이 장비가 가진 단점을 극복하는 일이 VRㆍAR의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불편함을 넘어서는 사례는 뜻밖에 한국 드라마에도 등장한다. 최근 종영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가는 주인공 현빈의 사투가 그려진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는 콘택트렌즈처럼 생긴 손톱 크기의 AR 기기이다.
이 마법같은 이야기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올 초 MWC 2019서 홀로렌즈2(HoloLens2)를 공개했다. 홀로렌즈2는 지난 2016년 처음 나온 제품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복잡한 동작 감지와 더 넓은 시야각을 제공한다. 착용이 간편하며 디자인적으로 우수해 거부감이 적다.
팔목 위의 가상 터치 스크린을 띄운 시크릿 브레이슬릿(Cicret Bracelet) 제품은 착용하는 것만으로 스마트 폰의 모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전화 송수신도 가능하다. 완벽한 방수 기능을 갖춰 욕조나 해변에서 전자책을 보거나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작동 원리는 팔찌 중앙에 있는 피코 프로젝터를 통해 팔목에 영상을 투영하고, 센서가 손가락이 터치한 부분과 손가락 움직임을 감지한다.
빅(ViKC, Virtual Keyboard Cover)은 레이저빔 프로젝터 키보드를 스마트폰 케이스에 장착한 제품이다. 별도의 장비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든 키보드를 작동시킬 수 있다.
리콘젯(Recon jet) 스마트 글래스는 이미 상용화된 웨어러블이다. 앱과 연동해 내비게이션, 주행정보, 기후 및 심박수 정보 등을 제공한다. 렌즈 하단에는 카메라가 달려있어 캠코더와 블랙박스 역할도 병행한다.
암밴드 컨트롤러 마이오(Myo)는 팔뚝 주위를 감싼 센서가 실제 근육 움직임을 감지하는 기술을 가졌다. 블루투스를 이용해 스마트 폰이나 TV와 연결 가능해 제스처 만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또 립모션(Leap Motion)은 허공에 움직이는 손을 인식해 PC나 기타 디바이스에 신호를 보내는 기기이다. 이 기술의 개발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쓰다 게이치(Keiichi Matsuda)는 "증강 현실은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고 몰입의 세계로 초대해 다른 현실의 세계로 여행을 보내는 장점이 있다"고 묘사했다.
◆ 연결 사회에서 재차 강조되는 것들
현실세계를 3차원 CG로 재현한 증강 지원, 즉 미러월드 역시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VRㆍAR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그것을 수 억개의 눈과 센서와 동기화시켜 빅데이터라는 바다에 모인다. 데이터를 다루는 모든 당사자간 투명성 확보나 상호 감시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 새로운 문명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그럼에도 미러 월드는 우리가 잃어버릴 것보다 더 유익한 경험을 던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의 바탕 위에서 증강ㆍ가상 및 혼합 기술은 최상위 개념의 XR로 진화하고 있다. CES 2019에서 선보인 XR기술은 '진짜이지만 진짜가 아닌 현실'이라는 개념을 남겼다. VR이 가상현실, AR이 증강현실, MR이 혼합현실이라면, XR은 확장현실기술이다. 가상의 공간에 현실의 공간을 증강한 후 그 융합의 바탕 위에 추가적인 합성 공간을 보여주는 체계다.
지난 6일 퀄컴이 선보인 스냅드래곤 XR2 플랫폼은 몰입감, 인공지능, 연결성에서 증강·가상·합성 현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인공지능 기반 기술과 5G 연결성이 결합해 확장현실(XR)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시각 효과와 상호 반응, 음향 기술을 제공했다.
이처럼 웨어러블 장치는 하드웨어적으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컨텐츠 면에서 아직 부족하다. XR은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기술이기에 다양한 시도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다른 성별을 경험하고, 신분을 바꾸거나 아이돌 가수ㆍ정치인ㆍ프로축구 선수ㆍ소방관 등 타인의 인생이나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치를 제공하게 된다.
물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속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5G 기술이 도입된 만큼 거대한 데이터 폭풍을 담은 콘텐츠의 등장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퀄컴의 XR 책임자인 휴고 스와트 부사장은 "XR 글라스는 현실과 가상을 오버레이할 수 있고, 혹은 95%의 가상현실과 5%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 XR을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만들 기술의 융합은 실제 일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참조기사 및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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