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위기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생각해 봐야 할 주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기술이 중심에 서고 사람은 도외시되는 그런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건 아닐지요.
세계적 명성의 '와이어드(WIRED)' 한국판, '와이어드코리아(WIRED Korea)'는 기술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고민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대표적 결과물들은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로울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지 준엄하게 질문합니다.
와이어드코리아는 '런칭 스페셜'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체, AR/VR, 블록체인 등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고 또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집중 진단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 편집자 드림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는 기업들의 목표는 5단계 중 최상위다. 스스로 판단하고 운전하는 레벨 상용화에 있다. 올해도 기업들은 최종 단계에 이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고 그에 대한 보완 작업도 이뤄졌다.
자율주행 기술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많은 위험과 변수에 노출돼 있다.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각종 제도정비, 책임소재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 보다 자율주행 사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율주행 기술은 미래 교통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현저히 변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5G, 전기 배터리, 신소재 산업 등과 만나면서 자율주행은 보다 더 이로운 기술로 진화하는 중이다.
◆ 자율적인 것은 기술적 진보를 꿈꾼다
"Fully autonomous cars may never arrive. But we'll all benefit from self-driving tech while we wait." (완전 자율주행차는 도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기술의 이점을 누리기 위한 연구는 착착 진행 중이다.)
1990년 개봉된 영화 '토탈리콜'에서 주인공 더글라스 퀘이드는 AI로봇이 운전하는 조니택시(Johnny Cab)에 탑승해 대화를 나눈다. 영화 속 자율주행차는 완성 단계였지만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주인공 역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72살이 되는 동안에도 현실의 조니택시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자동차 대표는 2020년까지 '언제 어디서나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완전한 자율주행차'를 완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가 약속 시간 안에 우릴 태우러 올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도로는 예측불허 투성이고, 로봇과 AI는 너무 비싸며 자율주행 기술은 여전히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글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수장인 존 크라프칙은 "(자율주행차가 가진) 그 자율성은 항상 제약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인간의 상상력이 빚은 영화 속 자율주행차는 곧 당도할 것이란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기술의 힘이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영역으로 이끌어간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조금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바람은 진화의 원동력이다.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의 라마 기라우(Rama Gheerawo) 교수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적합한 기술을 설계하는 것에서 진보된 세상을 찾고 있다. 부르기만 하면 당도하는 회의용 부스나 화장실을 제공하는 자율주행차를 상상하면 된다. 그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무인 자동차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 수용의 단계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믿는 것은 "인간 삶을 향상시키는 디자인의 힘"이다.
◆ 미완의 '레벨 5' 향해 가속 페달 밟는 미국
무엇을 배울 때 초급-중급-고급반으로 진급하듯 자율주행 기술도 단계가 있다. 2016년 국제자동차기술자협회(SAE International)가 분류한 자율주행차 단계는 ‘레벨 0’에서 ‘레벨 5’까지 나뉜다.
여기서 레벨 0은 운전자가 모든 차량 제어를 수행하는 비자동화인 초기 자동차 형태를 말한다. 레벨 1은 현재 출시 중인 상용차에 적용된 차로 유지보조(LFA), 스마트크루즈컨트롤(SCC) 기술을 의미한다. 조향 및 감·가속을 수행하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기술은 레벨 2에 속한다.
레벨 3부터는 일정한 환경에서 차량 스스로 차선을 변경하고, 앞차를 추월하거나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 이 때부터 시스템이 전체 주행을 수행하는 첫 자율주행 진입 단계라 할 수 있다. 레벨 4는 특정 주행모드서 시스템이 차량 제어에 관여하고 운전자 개입이 불필요한 '마인드 오프(Mind Off)' 단계이다.
최고 등급인 레벨 5는 모든 주행 환경서 차량 스스로 판단하고 제어하기에 운전자 판단과 개입이 전무한 '드라이버 오프(Driver Off)' 상태를 의미한다. 이 단계서는 지역과 도로 제한이 사라지고 주행차량의 판단 만으로 운전하게 된다.
현재 시험 운행 중인 차량은 레벨 3에서 레벨 4에 속한다. 이 차량들은 대부분 라이다(Lidar) 센서와 인공지능 컴퓨터를 부착한 채 레벨 업그레이드를 시도 중이다.
LFA, SCC도 안전 운전을 돕는 훌륭한 보조 기술이다. 굳이 레벨 5로 진화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같은 의문도 든다. 구글 개발자 크리스 엄슨(Chris Urmson)은 "운전보조시스템보다 무인자동차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도로 안전 문제가 위급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에서만 60개 이상 자율주행 차량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캘리포니아는 기술 메카인 실리콘밸리를 가졌고, 무인자동차 도로주행을 주 정부 승인 하에 허용하고 있다.
애리조나도 우버 SUV 자율차량에 의한 인명 사고 이전까지 운전자 동승 없는 자율주행을 허용했고, 펜실베니아 주도 자율주행 규칙을 제정해 적정 테스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바탕 위에 GM과 포드 등 미국 양산차 브랜드는 자율주행 차에 있어서 만큼은 벤츠나 BMW, 폭스바겐, 토요타 보다 높은 등급의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 기술이 제도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 목표는 인간의 인지력을 닮은 자율주행 기술
레벨 5 달성을 위한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경쟁은 치열하다. 일본 혼다는 2020년까지 고속도로 환경에서 자율주행을, 미국 포드는 2021년까지 가속 페달이 없는 차량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GM은 한 발 더 나아가 핸들과 페달이 없는 자율주행 차량 완성과 이를 이용한 카쉐어링 서비스 상용화를 구상 중이다.
현대자동차는 2021년까지 고속도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3 차량을 완성하고, 도심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 4 단계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자율주행차 개발은 비단 자동차 메이커 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주니퍼리서치는 자율주행차량이 2025년까지 220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거대한 신시장은 구글과 같은 혁신형 기업의 도전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자율주행 기술은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DNN) 기반 기계학습(딥러닝)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높은 단계의 인공지능(AI) 레벨을 달성하고자 '델파이-앱티브', 인텔-모빌아이', 구글-'웨이모', '드라이브닷에이아이'(drive.ai) 와 같은 기업도 자율주행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현대자동차와 SK텔레콤, 한화자산운용가 지난 12월 17일 AI 얼라이언스 펀드(AI Alliance Fund)를 통해 알베이(Arbe)의 고해상도 4D 이미징 레이더에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해상도 4D 이미징 레이더는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사고를 방지하는 자율주행차 필수 기술이다.
기술력은 이 미완의 차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유일한 방책이다. 사람에 비해 여전히 뒤쳐지는 주행 대처 능력은 이 심층신경망 연구의 최대 과제다.
MIT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연구소와 델프트 대학의 인지로봇연구소 연구원들은 인간의 지각 능력에 지배하는 사회학과 심리학을 수학적으로 공식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적용한 결과 AI의 판단력은 25% 향상됐다.
◆ 자율주행 차 사고가 두려운가, 알고 보면 '피해자'
고령화 사회는 노인 운전자 증가를 뜻한다. 한국이 떠안고 문제인 고령층 운전자의 증가는 자동차 사고율 증가로 귀결된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젊은 운전자의 제어능력을 7초라고 할 때 60세 운전자의 자동차 반응속도는 8.3초로 나타났다.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로 그 사고 위험도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라 게 한국사회가 감내 해야할 미래다.
노인 인구의 이동권을 제공함과 동시에 치솟는 사고율을 낮추는 데 자율주행차가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레벨 5 차량이 완성된다면 시각 장애인도 동승자 없이 여행을 떠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음주나 졸음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에 자율주행은 적정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로운 기술에 대한 사고 소식은 기술을 오히려 두려움으로 각인시키는 역설을 불러왔다.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사고 소식을 통해 위험성이 걱정된다고 답한 비중은 한국(68%), 미국(65%), 중국·인도(64%), 독일(56%), 일본(50%) 등 순이었다.
사실 이 사고 뉴스에 가려진 진실은 인공지능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게 더 안전한 일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기계학습이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 사람에 의한 조작미숙이나 음주ㆍ졸음ㆍ발작ㆍ미진단 차량결함과 같은 치명적 과실이나 응급상황에 놓이는 일은 사라질테니 말이다.
미 연방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운전대를 잡은 사람에 의해 도로 위 사망자는 3만 6000명에 달했다. 한국 내 사망자도 연 3700명에 이르렀다.
결국 자율주행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복잡한 안전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도로 상 안전을 지키는 최적화된 주행기술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구글의 웨이모는 2009년부터 약 8년에 걸친 개발 기간과 시험 도로주행 1000만 마일을 돌파하는 중 14번의 충돌이 있었다. 엄슨(Urmson)은 이 과정 중 "웨이모 자율주행차가 가해자인 사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명한 원인은 인간의 실수와 부주의였으며, 거꾸로 자율주행차가 피해자 였다고 증언했다.
◆ 자율주행 세상을 열기 전에
구글이 착안한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 운영 주체인 '사이드웍랩스(Sidewalk Labs)'는 더 저렴한 주택, 더 나은 대중교통, 더 적은 오염, 더 많은 공원과 녹지, 더 안전한 자전거 경로, 더 짧은 통근을 목표로 세웠다.
자율주행 기술은 확장 가능한 스마트 도시를 예견하고 있다. 구글 도시가 언급한 모든 문제는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할 때 실현할 수 있다. 교통 부담이 사라지는 도시, 심지어 강아지 산책도 담당할 수 있는 이 자율주행 기술이 바꿀 미래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커넥티드 카 기술도 5G 통신 보급과 함께 단순한 교통 안전 지원이나 음악 및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범주를 넘어 사용자의 사회관계망과 연결된 거대한 사물 인터넷(IoT) 단계로 진화 중이다.
예측불가 움직임에 대한 반응 기술이 발전 단계를 높이는 동안 우리 사회는 무인 자율주행차의 보험 책임이나 사고시 처벌 문제 등 규제 발굴에 성실하지 못했다. 사생활 침해, 고라니처럼 불쑥 튀어나와 다른 차량과 보행자를 위해하는 '킥라니' 문제, 스마트 모빌리티와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규제도 필요하다.
차량을 호출하기만 하면 내 차가 되는 공유차 시대를 열 지, 일본차나 독일차 같은 특정 메이커 편중이 심화될 지 예상할 수 없는 단계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율주행 산업은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담고 있다. 기술 진화는 4차 산업혁명이 사람에게 이로운 것임을 증명하는 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