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AVENDER AU, WIRED UK
2020년,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이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 컨퍼런스 현장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을 언급했다. 마윈은 “성공은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 관료에게 잠깐 생각을 멈추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더 노력하도록 하고는 했던 표현을 인용했다. 마윈은 해당 발언을 규제 당국과 국영은행 관계자 앞에서 하면서 핀테크 부문의 미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마윈은 중국과 전 세계 테크 업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어 인지도가 높은 중국 테크 업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마윈이 정부 관료 비판 발언을 한 시점은 알리바바 세계 최대 디지털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Alipay) 소유 기업인 앤트 그룹(Ant Group)의 상하이, 홍콩 주식 상장 직전이다. 당시 앤트 그룹의 상장은 전 세계 역대 최고 규모의 주식 상장이 될 것으로 주목받았다. 2020년 11월 2일, 마윈이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 관료를 비판하고 몇 주가 지나자 비판 대상이 되었던 같은 규제 당국 관료의 심문을 받았다. 며칠 뒤 앤트 그룹의 340억 달러 규모 주식 상장은 보류되었다. 그리고 약 3개월간 마윈은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인터넷에서는 각종 근거 없는 소문이 대거 확산되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마윈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는 논쟁이 이어졌다. “마윈이 가택연금 상태가 되었는가?”, “중국 정부가 마윈을 외국으로 추방했는가?”, “혹은 마윈이 당국의 체포를 피하려 해외 망명을 떠난 것은 아닌가?” 등과 같은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마윈이 대중의 눈에 다시 포착되었을 때, 이미 다수 누리꾼은 마윈이 스스로 해외로 도피한 것이라는 논의가 시작됐다. 마윈은 여러 컨퍼런스 현장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지 않았다. 마윈이 외국에서 여느 억만장자와 다를 바 없는 듯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됐다. 마윈이 골프장 차량에 탑승한 사진이 확산됐다. 또, 요트를 탄 모습도 포착됐다. 마윈이 어장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도 등장했다. 그리고 친구와 랍스터를 먹는 모습도 포착됐다. 기자단은 도쿄 비공개 클럽에서 마윈의 행방을 추적했다. 이후 태국에서 마윈을 발견했다. 태국에서는 무에타이 전설로 유명한 선수와 주먹을 쥔 모습이 발견됐다.
마윈이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대중의 눈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된 연설은 중국 테크 업계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으로 기록됐다. 마윈을 향한 극찬은 일반적으로 다른 재벌을 우상처럼 우러러보는 것 이상이었다. 마윈은 혈연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종종 투자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필요한 조건인 해외 명문 학교 졸업장도 없는 상태에서 성공했다. 알리바바는 100% 중국산 제품을 자체 생산하여 판매했다. 마윈의 인지도 상승은 평범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중국에서는 ‘마 바바(Ma Baba)’, ‘아버지 마윈(Daddy Ma)’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누구나 마윈처럼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윈의 명예 실추는 규제 당국이 누구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2023년 3월 27일, 마윈이 중국 땅을 다시 밟았다. 중국 소셜 미디어 플랫폼 웨이보에는 “마윈이 돌아왔다”라는 검색어가 최고 인기 검색어가 되었다. 많은 누리꾼이 마윈의 복귀 이유와 마윈의 복귀가 중요한 이유를 추측했기 때문이다. 마윈의 복귀가 중국 정부의 테크 업계를 향한 태도 변화의 조짐일까? 어느 한 누리꾼은 “마윈이 직접 귀국을 택한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다시 불러들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물간 늙은이가 돌아온 것 아닌가?”, “마윈의 복귀가 반응할 만한 소식인가?” 등과 같은 반응을 보인 누리꾼도 더러 존재했다.
마윈은 단순히 테크 업계에서만 상징적인 인물이 아니다. 21세기 중국 민간 기업의 기반을 다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마윈이 항저우의 어느 한 작은 아파트에서 창업한 알리바바는 초기에 잠재적인 고객에게 인터넷은 사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했다. 알리바바 내부에서 전달된 이야기 중에는 아이언 솔저(Iron Soldiers)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알리바바 초기 영업팀이 간혹 접하는 경비견의 경비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가죽 배낭을 메고 여러 가구를 방문하여 기업 홍보에 나서 기업가의 사업 계약을 설득했다는 일화가 있다.
아이언 솔저 소속 직원은 퇴사 후 알리바바에 재직할 당시 경험한 일을 담은 책을 출판했다. 대부분 알리바바 퇴사 후 컨설팅 기업을 창업했다. 그리고 알리바바의 철학과 6가지 기본 가치관을 다룬 책도 출판했다. 알리바바의 글로벌 핵심 회계 총괄 담당자였던 샤론 가이(Sharon Gai)는 “알리바바 출신 직원의 책에 담긴 내용 대부분 MBA 강의에서 배우는 바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가이는 알리바바에 근무할 당시 중국인 CEO 중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50년대에 기술 대학을 졸업한 이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당시 중국에는 MBA와 같은 학위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와 같은 경영과 사업 운영 철학도 없었다. 마윈과 알리바바 초창기 직원이 중국 기업에 부족한 사업 철학을 선보였다.
알리바바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했다. 전 세계 규모의 운송 네트워크와 수많은 인구가 매일 사용하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엔터테인먼트, 헬스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알리바바는 모든 소비자가 원하거나 필요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알리바바는 자사의 원칙을 열과 성을 다하여 홍보했으며, 마윈은 알리바바의 원칙을 전달하는 예언자와 같은 존재였다. 가이가 설명한 바와 같이 텐센트 회장 마화텅을 포함한 다른 기업가가 마윈과 같은 수준으로 인지도를 얻고 대외적으로 모습을 자주 드러내면서 자신을 과시하지 않은 반면, 마윈은 거의 모든 컨퍼런스에 항상 얼굴을 비췄다. 가이는 “마윈은 가르침과 나눔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라고 말했다.
마윈은 종종 비정상적일 정도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인물이다. 마윈은 라이브스트리밍 부문에서 ‘중국 립스틱의 황제’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름을 알린 기업가 리자치와 경쟁했다. 리자치와 마윈의 립스틱 판매량은 100:1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마윈은 쿵푸 영화에 출연하고, 직접 각본도 작성하여 이연걸과 견자단 등 유명 배우와 대결을 펼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교육 개혁을 염두에 두고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알리바바를 떠난다고 공식적으로 알렸을 당시에는 기타를 메고 가발을 쓰면서 락스타의 마지막 무대처럼 마지막 행사를 즐겼다.
그러나 마윈은 중국 테크 업계 대기업이 대중과 정부의 관심을 잃던 시점에 명성을 잃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20년, 복수 언론 보도 내용과 SNS 대화 내용은 갈수록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 6일 근무’라는 테크 기업의 가혹한 근무 시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테크 기업 사무실 근로자 사이에서, 그리고 길거리 곳곳에서는 기술 보급으로 자유가 증가하기는커녕 알고리즘에 갇혔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중국 외 다른 국가에서 많은 이들이 데이터 기업의 사용자 데이터 대규모 수집 관행과 부유층의 부를 증식시킬 목적으로 기술을 배치한 방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중국 누리꾼은 SNS에서 자본으로 통제된다는 언급을 자제했다. 테크 업계 대기업은 막대한 권력을 지니면서 중국 경제 대부분을 장악했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 앱이 없는 상태에서 평범한 삶을 누리기 어렵다. 중국인 대부분 말 그대로 알리바바 앱에서 소액 대출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알리페이로 부채 대부분을 상환한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구원 앨리슨 자오(Alison Zhao) 연구원은 “알리바바와 같은 소수 대기업의 독점적 권력은 매우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갈수록 테크 업계 대기업의 일상적인 운영 상황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에서 테크 업계 대기업 여러 곳이 신선 식품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하려 경쟁을 펼치던 2020년 초반 이른바 ‘채소 전쟁’이 시작되자 어느 한 국영 언론은 “양배추 묶음에만 집중하지 말라”라는 제목과 함께 기업가에게 기업 매출 달성을 넘어선 부분까지 염두에 두도록 설득하는 내용의 논평을 게재했다. 중국 정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 강화와 연구, 개발 노력 강화, 단순히 거대한 규모의 자원을 사용해 판매 실적을 최대한 높이는 대신 진정한 혁신을 원했다.
정부의 테크 업계 개입은 전면 규제 단속 시행과 함께 악화되었다. 정부는 규제로 테크 부문을 사회적 이익을 위해 정부가 장악해야 할 산업으로 설명했다.
중국 테크 기업 경영진 대부분 정부 규제에 따라 사업 관행을 수정해야 했다. 알리바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량 공유 서비스 기업 디디는 정부 당국의 수사 이후 자발적으로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티몰(Tmall)은 불규칙한 가격 책정 관행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앤트 그룹은 소비자 금융 부문에 금융 기관과 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등 조직 개편에 나섰다.
정부 최고위급 관료는 테크 업계를 대상으로 한 정부 단속이 끝나지는 않더라도 서서히 완화될 것이라는 점을 재차 확신했다. 디디 앱은 앱스토어에 다시 등록됐다. 테크 업계 경제가 다시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심리가 지배적이다. 자오 연구원은 “테크 기업을 향한 확신이 규제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시장이 다시 확신을 얻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마윈의 복귀는 테크 업계 대기업과 중국 정부 간 화해 조짐을 어느 정도 시사한다. 다만, 마윈은 이제 앤트 그룹을 관리하지 않는다.
테크 업계에는 리커창 총리가 마윈을 다시 중국으로 불러들였다는 소문이 퍼지는 중이다. 리커창은 중국 전 영역에서 최고 관리자 역할을 하며, 갖아 최근에는 중국 금융 부문의 핵심 인물이 되면서 민간 기업을 옹호한다는 명성을 얻었다. 리커창의 감독에 따라 테슬라는 중국에 공장을 완벽히 소유하고, 상하이 버전 나스닥에 등록된 최초의 외국 기업이 되면서 테크 기업의 자본 접근성을 확장했다. 리커창은 총리로 취임한 뒤 중국 곳곳을 순방하며, 첨단 제조 시설과 핵심 기술을 논의하면서 외국 대표단을 만나 국제 투자를 이야기했다. 과거 다수가 생각한 것처럼 중국은 민간 기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했다.
마윈의 교화와 같은 일이 중국의 민간 기업 투자 지지라는 메시지를 보낼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윈이 중국에 돌아온 날 알리바바 주가는 약 5.5% 급등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락했다.) 이튿날 알리바바는 6개 부서 분리 계획을 발표했다. 각각의 부서는 외부 자금 조달과 주식 상장이 가능한 부서이다. 해당 소식이 알려진 뒤 알리바바 주식 종가는 주식 시장 개장 시점보다 14.3% 상승했다.
여전히 테크 업계에는 불확실한 상황이 존재하지만, 테크 업계는 투자 유입 재개를 위해 상징적인 동향보다 더 많은 호재가 필요하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애널리스트 침 리(Chim Lee)는 “기업의 운영 환경이 긍정적인 상황이라는 사실을 보장할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마윈의 중국 복귀보다 더 큰 희소식이 있어야 기업이 미래 전망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사실 마윈은 기업가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교육자로 돌아온 것이다. 마윈은 알리바바 창업 전 활동한 경력으로 복직했다. (알리바바 사무실에서는 마윈을 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마윈은 홍콩대학교 명예교수로 부임했으나 대학 소속으로 연구만 하고, 일본과 르완다, 이스라엘 대학 소속 전문가의 방문 시 대표로 환영하기도 했다. 마윈이 중국에 복귀한 모습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마윈이 있었던 곳은 항저우에 직접 설립했던 학교이다. 마윈은 레저 의상과 올버즈 신발을 착용한 채로 인공지능(AI)이 교육계에 미칠 문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마윈은 강연 현장에서 챗GPT의 등장은 AI 시대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윈은 지금도 테크 업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대중의 인식이 바뀌었다. 마윈이 3년 만에 대중의 눈에 띄었을 때, 누리꾼은 마윈을 샤오미 회장 레이쥔, 치후360(Qihoo 360) 회장 저우훙이와 같은 인물로 표현했다. 마윈의 중국 복귀 소식보다 웹 2.0 기업과 AI, 전기차 개발 기업 소식이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중국 누리꾼 대부분 바이두가 챗GPT를 상대로 경쟁을 펼칠 것을 기대한다.
중국 정부가 다시 중국 경제의 중심이 된 시대에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특정 인물 한 명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리는 “마윈과 같은 중국 민간 테크 기업의 거물급 기업가가 중국 경제 동력을 견인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언급했다. 마윈이 인용한 발언에는 다음과 같은 혁신이 있다. 마윈의 성공은 마윈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Jack Ma Isn't Back
2020년,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이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 컨퍼런스 현장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을 언급했다. 마윈은 “성공은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 관료에게 잠깐 생각을 멈추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더 노력하도록 하고는 했던 표현을 인용했다. 마윈은 해당 발언을 규제 당국과 국영은행 관계자 앞에서 하면서 핀테크 부문의 미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마윈은 중국과 전 세계 테크 업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어 인지도가 높은 중국 테크 업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마윈이 정부 관료 비판 발언을 한 시점은 알리바바 세계 최대 디지털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Alipay) 소유 기업인 앤트 그룹(Ant Group)의 상하이, 홍콩 주식 상장 직전이다. 당시 앤트 그룹의 상장은 전 세계 역대 최고 규모의 주식 상장이 될 것으로 주목받았다. 2020년 11월 2일, 마윈이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 관료를 비판하고 몇 주가 지나자 비판 대상이 되었던 같은 규제 당국 관료의 심문을 받았다. 며칠 뒤 앤트 그룹의 340억 달러 규모 주식 상장은 보류되었다. 그리고 약 3개월간 마윈은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인터넷에서는 각종 근거 없는 소문이 대거 확산되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마윈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는 논쟁이 이어졌다. “마윈이 가택연금 상태가 되었는가?”, “중국 정부가 마윈을 외국으로 추방했는가?”, “혹은 마윈이 당국의 체포를 피하려 해외 망명을 떠난 것은 아닌가?” 등과 같은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마윈이 대중의 눈에 다시 포착되었을 때, 이미 다수 누리꾼은 마윈이 스스로 해외로 도피한 것이라는 논의가 시작됐다. 마윈은 여러 컨퍼런스 현장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지 않았다. 마윈이 외국에서 여느 억만장자와 다를 바 없는 듯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됐다. 마윈이 골프장 차량에 탑승한 사진이 확산됐다. 또, 요트를 탄 모습도 포착됐다. 마윈이 어장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도 등장했다. 그리고 친구와 랍스터를 먹는 모습도 포착됐다. 기자단은 도쿄 비공개 클럽에서 마윈의 행방을 추적했다. 이후 태국에서 마윈을 발견했다. 태국에서는 무에타이 전설로 유명한 선수와 주먹을 쥔 모습이 발견됐다.
마윈이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대중의 눈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된 연설은 중국 테크 업계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으로 기록됐다. 마윈을 향한 극찬은 일반적으로 다른 재벌을 우상처럼 우러러보는 것 이상이었다. 마윈은 혈연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종종 투자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필요한 조건인 해외 명문 학교 졸업장도 없는 상태에서 성공했다. 알리바바는 100% 중국산 제품을 자체 생산하여 판매했다. 마윈의 인지도 상승은 평범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중국에서는 ‘마 바바(Ma Baba)’, ‘아버지 마윈(Daddy Ma)’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누구나 마윈처럼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윈의 명예 실추는 규제 당국이 누구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2023년 3월 27일, 마윈이 중국 땅을 다시 밟았다. 중국 소셜 미디어 플랫폼 웨이보에는 “마윈이 돌아왔다”라는 검색어가 최고 인기 검색어가 되었다. 많은 누리꾼이 마윈의 복귀 이유와 마윈의 복귀가 중요한 이유를 추측했기 때문이다. 마윈의 복귀가 중국 정부의 테크 업계를 향한 태도 변화의 조짐일까? 어느 한 누리꾼은 “마윈이 직접 귀국을 택한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다시 불러들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물간 늙은이가 돌아온 것 아닌가?”, “마윈의 복귀가 반응할 만한 소식인가?” 등과 같은 반응을 보인 누리꾼도 더러 존재했다.
마윈은 단순히 테크 업계에서만 상징적인 인물이 아니다. 21세기 중국 민간 기업의 기반을 다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마윈이 항저우의 어느 한 작은 아파트에서 창업한 알리바바는 초기에 잠재적인 고객에게 인터넷은 사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했다. 알리바바 내부에서 전달된 이야기 중에는 아이언 솔저(Iron Soldiers)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알리바바 초기 영업팀이 간혹 접하는 경비견의 경비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가죽 배낭을 메고 여러 가구를 방문하여 기업 홍보에 나서 기업가의 사업 계약을 설득했다는 일화가 있다.
아이언 솔저 소속 직원은 퇴사 후 알리바바에 재직할 당시 경험한 일을 담은 책을 출판했다. 대부분 알리바바 퇴사 후 컨설팅 기업을 창업했다. 그리고 알리바바의 철학과 6가지 기본 가치관을 다룬 책도 출판했다. 알리바바의 글로벌 핵심 회계 총괄 담당자였던 샤론 가이(Sharon Gai)는 “알리바바 출신 직원의 책에 담긴 내용 대부분 MBA 강의에서 배우는 바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가이는 알리바바에 근무할 당시 중국인 CEO 중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50년대에 기술 대학을 졸업한 이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당시 중국에는 MBA와 같은 학위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와 같은 경영과 사업 운영 철학도 없었다. 마윈과 알리바바 초창기 직원이 중국 기업에 부족한 사업 철학을 선보였다.
알리바바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했다. 전 세계 규모의 운송 네트워크와 수많은 인구가 매일 사용하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엔터테인먼트, 헬스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알리바바는 모든 소비자가 원하거나 필요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알리바바는 자사의 원칙을 열과 성을 다하여 홍보했으며, 마윈은 알리바바의 원칙을 전달하는 예언자와 같은 존재였다. 가이가 설명한 바와 같이 텐센트 회장 마화텅을 포함한 다른 기업가가 마윈과 같은 수준으로 인지도를 얻고 대외적으로 모습을 자주 드러내면서 자신을 과시하지 않은 반면, 마윈은 거의 모든 컨퍼런스에 항상 얼굴을 비췄다. 가이는 “마윈은 가르침과 나눔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라고 말했다.
마윈은 종종 비정상적일 정도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인물이다. 마윈은 라이브스트리밍 부문에서 ‘중국 립스틱의 황제’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름을 알린 기업가 리자치와 경쟁했다. 리자치와 마윈의 립스틱 판매량은 100:1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마윈은 쿵푸 영화에 출연하고, 직접 각본도 작성하여 이연걸과 견자단 등 유명 배우와 대결을 펼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교육 개혁을 염두에 두고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알리바바를 떠난다고 공식적으로 알렸을 당시에는 기타를 메고 가발을 쓰면서 락스타의 마지막 무대처럼 마지막 행사를 즐겼다.
그러나 마윈은 중국 테크 업계 대기업이 대중과 정부의 관심을 잃던 시점에 명성을 잃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20년, 복수 언론 보도 내용과 SNS 대화 내용은 갈수록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 6일 근무’라는 테크 기업의 가혹한 근무 시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테크 기업 사무실 근로자 사이에서, 그리고 길거리 곳곳에서는 기술 보급으로 자유가 증가하기는커녕 알고리즘에 갇혔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중국 외 다른 국가에서 많은 이들이 데이터 기업의 사용자 데이터 대규모 수집 관행과 부유층의 부를 증식시킬 목적으로 기술을 배치한 방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중국 누리꾼은 SNS에서 자본으로 통제된다는 언급을 자제했다. 테크 업계 대기업은 막대한 권력을 지니면서 중국 경제 대부분을 장악했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 앱이 없는 상태에서 평범한 삶을 누리기 어렵다. 중국인 대부분 말 그대로 알리바바 앱에서 소액 대출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알리페이로 부채 대부분을 상환한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구원 앨리슨 자오(Alison Zhao) 연구원은 “알리바바와 같은 소수 대기업의 독점적 권력은 매우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갈수록 테크 업계 대기업의 일상적인 운영 상황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에서 테크 업계 대기업 여러 곳이 신선 식품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하려 경쟁을 펼치던 2020년 초반 이른바 ‘채소 전쟁’이 시작되자 어느 한 국영 언론은 “양배추 묶음에만 집중하지 말라”라는 제목과 함께 기업가에게 기업 매출 달성을 넘어선 부분까지 염두에 두도록 설득하는 내용의 논평을 게재했다. 중국 정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 강화와 연구, 개발 노력 강화, 단순히 거대한 규모의 자원을 사용해 판매 실적을 최대한 높이는 대신 진정한 혁신을 원했다.
정부의 테크 업계 개입은 전면 규제 단속 시행과 함께 악화되었다. 정부는 규제로 테크 부문을 사회적 이익을 위해 정부가 장악해야 할 산업으로 설명했다.
중국 테크 기업 경영진 대부분 정부 규제에 따라 사업 관행을 수정해야 했다. 알리바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량 공유 서비스 기업 디디는 정부 당국의 수사 이후 자발적으로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티몰(Tmall)은 불규칙한 가격 책정 관행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앤트 그룹은 소비자 금융 부문에 금융 기관과 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등 조직 개편에 나섰다.
정부 최고위급 관료는 테크 업계를 대상으로 한 정부 단속이 끝나지는 않더라도 서서히 완화될 것이라는 점을 재차 확신했다. 디디 앱은 앱스토어에 다시 등록됐다. 테크 업계 경제가 다시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심리가 지배적이다. 자오 연구원은 “테크 기업을 향한 확신이 규제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시장이 다시 확신을 얻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마윈의 복귀는 테크 업계 대기업과 중국 정부 간 화해 조짐을 어느 정도 시사한다. 다만, 마윈은 이제 앤트 그룹을 관리하지 않는다.
테크 업계에는 리커창 총리가 마윈을 다시 중국으로 불러들였다는 소문이 퍼지는 중이다. 리커창은 중국 전 영역에서 최고 관리자 역할을 하며, 갖아 최근에는 중국 금융 부문의 핵심 인물이 되면서 민간 기업을 옹호한다는 명성을 얻었다. 리커창의 감독에 따라 테슬라는 중국에 공장을 완벽히 소유하고, 상하이 버전 나스닥에 등록된 최초의 외국 기업이 되면서 테크 기업의 자본 접근성을 확장했다. 리커창은 총리로 취임한 뒤 중국 곳곳을 순방하며, 첨단 제조 시설과 핵심 기술을 논의하면서 외국 대표단을 만나 국제 투자를 이야기했다. 과거 다수가 생각한 것처럼 중국은 민간 기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했다.
마윈의 교화와 같은 일이 중국의 민간 기업 투자 지지라는 메시지를 보낼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윈이 중국에 돌아온 날 알리바바 주가는 약 5.5% 급등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락했다.) 이튿날 알리바바는 6개 부서 분리 계획을 발표했다. 각각의 부서는 외부 자금 조달과 주식 상장이 가능한 부서이다. 해당 소식이 알려진 뒤 알리바바 주식 종가는 주식 시장 개장 시점보다 14.3% 상승했다.
여전히 테크 업계에는 불확실한 상황이 존재하지만, 테크 업계는 투자 유입 재개를 위해 상징적인 동향보다 더 많은 호재가 필요하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애널리스트 침 리(Chim Lee)는 “기업의 운영 환경이 긍정적인 상황이라는 사실을 보장할 기관 차원의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마윈의 중국 복귀보다 더 큰 희소식이 있어야 기업이 미래 전망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사실 마윈은 기업가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교육자로 돌아온 것이다. 마윈은 알리바바 창업 전 활동한 경력으로 복직했다. (알리바바 사무실에서는 마윈을 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마윈은 홍콩대학교 명예교수로 부임했으나 대학 소속으로 연구만 하고, 일본과 르완다, 이스라엘 대학 소속 전문가의 방문 시 대표로 환영하기도 했다. 마윈이 중국에 복귀한 모습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마윈이 있었던 곳은 항저우에 직접 설립했던 학교이다. 마윈은 레저 의상과 올버즈 신발을 착용한 채로 인공지능(AI)이 교육계에 미칠 문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마윈은 강연 현장에서 챗GPT의 등장은 AI 시대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마윈은 지금도 테크 업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대중의 인식이 바뀌었다. 마윈이 3년 만에 대중의 눈에 띄었을 때, 누리꾼은 마윈을 샤오미 회장 레이쥔, 치후360(Qihoo 360) 회장 저우훙이와 같은 인물로 표현했다. 마윈의 중국 복귀 소식보다 웹 2.0 기업과 AI, 전기차 개발 기업 소식이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중국 누리꾼 대부분 바이두가 챗GPT를 상대로 경쟁을 펼칠 것을 기대한다.
중국 정부가 다시 중국 경제의 중심이 된 시대에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특정 인물 한 명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리는 “마윈과 같은 중국 민간 테크 기업의 거물급 기업가가 중국 경제 동력을 견인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언급했다. 마윈이 인용한 발언에는 다음과 같은 혁신이 있다. 마윈의 성공은 마윈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Jack Ma Isn't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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