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기가헤르츠(㎓) 대역 주파수를 사용하는 고성능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를 빠르게 시행해 주길 바랍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1월 29일, 국내 이동통신 3개 사업자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주파수 대역을 언급했다. 현재 5G 서비스는 3.5㎓와 5㎓ 인근 주파수를 이용해 서비스 중이다. 이 주파수를 28㎓ 대역으로 끌어 올려 통신속도를 한층 더 높일 기반을 마련하고, 병목현상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
5G에 새로 할당하려는 28㎓의 주파수는 인공위성 통신용 주파수 중에서도 상위인 KA밴드(18∼30㎓) 중 거의 말단에 해당한다. 개인용 이동전화 통신에 사용하기엔 상상도 하기 어려웠을 만큼 높은 주파수다.
통신용 주파수를 여기까지 높이면 도대체 어떤 이점이 있는 것일까. 왜 정부는 이 주파수를 권장하고, 사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면서도 난색을 표하는 것일까.
◆주파수 놓고 신경전 벌어지는 이유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전파와 주파수의 기본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주파수란 ‘전파나 소리 등이 1초 동안에 진동하는 횟수’를 의미한다. 1메가헤르츠(㎒)의 전파는 1초에 백만 번 진동한다. 1000㎒가 1㎓이므로, 5G통신에 새로 배정하려고 하는 28㎓는 2만8000㎒에 해당한다. 1초에 280억 번 진동하는 전파의 파장인 셈이다.
주파수가 낮은 전파는 회절성이 강하고, 장애물 뒤편으로도 잘 전달된다. 반대로 주파수가 높은 전파일수록 직진성이 강해진다.
이는 라디오 전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는데, AM라디오의 경우 주파수가 500~1000킬로헤르츠(㎑) 정도다. 1㎑면 1초에 겨우 1000번 진동한다. 그러니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이나 중국, 북한의 방송이 잡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반대로 FM 방송은 80~100㎒ 사이의 전파를 이용한다. AM라디오 전파에 비해 직진성이 강하므로 산이나 높은 빌딩 등을 넘어 멀리 전달되기 어렵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아주 먼 곳으로는 전파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방송 중인 시나 도 단위를 벗어나면 듣기 어렵게 된다.
이 원리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낮은 주파수의 전파를 사용할수록 접속률이 좋아진다. 높은 주파수를 통신에 원활하게 이용하려면 낮은 주파수를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중계기를 깔아야 한다. 그럼에도 건물내 구석진 공간 등 모든 곳에 전파를 보내기 어려워 일정 부분 불편은 감수하고 통신망을 설계하게 된다. 전파통신이란 주파수가 낮을수록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흔히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면 데이터 통신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이야기 하지만 전파의 접속률이 높은 것과, 데이터 전송속도가 빠른 것은 각각 다른 이야기다.
데이터 통신 속도는 주파수의 높낮이보다는 대역폭, 즉 '전파의 폭'이 중요하다.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자동차를 보내기 위해선 도로의 제한속도를 높여도 큰 효과가 없고, 차선의 개수를 늘려야 한다.
전파도 마찬가지다. 라디오를 예로 들어보자. KBS2 FM라디오는 주파수가 89.1㎒로 정해져 있는데, 실제로는 89.0~89.2㎒ 사이의 전파를 모두 쓴다. 즉 0.2㎒ 너비(대역폭)의 전파에 음성신호를 실어서 보낸다. 대역폭이 충분해 생생한 스테레오 음질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면 AM라디오의 대역폭은 0.009MHz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잡음이 심하고 사람 목소리 정도만 간신히 전달하는데 그친다.
현재 국내 5G 통신은 3.5㎓ 인근 대역에서 서비스 중이다. 통신사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80~100㎒ 정도의 대역폭을 이용해 서비스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경매를 통해 정부에 비용을 지불하고, 지정된 대역폭을 할당받아 사용하고 있다.
◆고대역 주파수, 피할 수 없는 흐름
그렇다면 굳이 통신에 불리한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지 말고, 낮은 주파수를 이용해 대역폭만을 충분히 넓혀주면 빠르고 편리한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그 대역의 주파수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다른 통신 서비스와 중복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적으로 약속해 두고 사용하는 대역이 있다. 0.3㎒ 이하로 낮은 초장파, 장파 등은 비상 통신용으로 많이 쓰인다. 해상통신, 표지통신, 선박이나 항공기의 유도 등에 쓰인다. 0.3~800㎒ 정도의 주파수는 단파방송, 국제방송, FM 라디오, TV방송 등에 고루 쓰인다.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 몫으로 할당되는 건 보통 800㎒부터다.
2세대 이동통신(CDMA)나 3세대 이동통신(WCDMA) 중 일부 서비스는 800㎒대 주파수를 활용했다. 가장 통신품질이 좋아 이른바 ‘황금 주파수’라고 불렸다. 이 대역을 확보한 통신사는 1000~2000㎒ 인근 주파수를 보유한 경쟁사보다 서비스 품질이 우수해 경쟁력이 컸다. 800㎒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TV방송 등과 혼선이 될 수 있어 사실상 휴대전화 전파로 쓰기엔 가장 낮은 주파수다.
이 근처에서 주파수 대역을 아무리 넓혀주고 싶어도 사실상 방법이 없다. 이미 모든 자원을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CDMA나 WCDMA는 물론 LTE, 디지털 방송 등에서도 700㎒ 이상, 2~3㎓ 정도의 주파수를 나누어 사용 중이다.
그러니 과거에는 ‘개인 통신용으로는 쓰기 어렵다’며 인공위성 등의 우주통신에서 주로 사용하던 3㎓ 이상의 전파를 이미 5G 통신망에 일부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인근에서 더 이상 주파수를 늘려주다간 군사용 통신, 인공위성 통신시스템 등과 혼선을 피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도 있는데, 주파수가 낮으면, 대역폭을 넓히는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1000㎒대 서비스라면 앞뒤로 10%의 대역폭을 추가로 할당해 주어도 100㎒ 정도의 대역폭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20㎓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을 때 10%의 자원만 추가로 확보해 주어도 2㎓의 넓은 대역을 얻을 수 있다.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면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은 사실 이런 의미에서 쓰인다.
다음 세대의 이동통신, 즉 원래부터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속도를 높일 방법은 대역폭을 더 넓게 잡는 것뿐이다. 5G 역시 마찬가지다. 5G는 처음에 LTE의 20배 이상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지금은 실제로는 5배 미만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보다 높은 속도를 실현하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대역폭을 더 넓게 잡아주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8㎓ 인근에 1400㎒의 대역폭을 추가로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통신사마다 400~500㎒까지 분배해서 국민들의 통신 대역폭을 넓히는데 쓰겠다는 것이다. 28㎓ 주파수를 둘러싼 정부 5G 정책의 골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