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ANNAH RITCHIE, WIRED UK
기후변화가 인류의 최대 위협 요소인가?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변할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기후변화에 절망적으로 느낄 것이다. 최근 공개된 어느 한 설문 조사는 전 세계 10개국의 16~25세 인구 1만 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해 설명하라는 요청을 했다. 결과는 매우 절망적이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인류의 운명이 절망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3/4은 미래가 두렵다고 말했다. 55%는 “부모 세대보다 얻는 기회가 적을 것”이라고, 52%는 가정의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39%는 기후변화 위기 때문에 미래에 자녀를 출산하는 것을 꺼린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의 기후변화 관련 절망적인 태도는 부유국과 빈곤국,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 똑같았다. 미국과 영국부터 브라질과 필리핀, 인도, 나이지리아 등 어느 국가나 젊은 세대의 기후변화에 관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 세대가 기후변화에 대해 절망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타당하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필자의 작업 상당 부분이 기후변화 문제 연구와 글 작성, 관련 문제 생각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필자가 답을 찾기를 거의 포기한 부분이다. 최근 환경 과학과 기후변화 학위를 받고 대학을 졸업한 필자는 기후변화 문제에 이바지할 부분을 찾기 매우 어려웠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필자의 태도는 분노에서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어떠한 노력도 결실이 없는 듯하여 필자는 기후변화 개선 노력을 중단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필자의 견해가 바뀌었다. 필자가 기후변화 연구를 한 사실이 기쁘다. 단순히 기후 관련 일을 계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사고방식을 고수했다면, 필자가 그동안 진행한 연구가 여러 차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덕분이다. 이 덕분에 필자는 인류가 기후 문제를 두고 진전을 거두고자 한다면, 비관주의적인 태도를 떨쳐내야 한다.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 기후변화와 함께 수많은 위험 요소가 등장한다. 일부 확실한 문제도 있고, 불확실한 문제도 있으며, 인류는 배출량 감축이라는 결과를 얻기 충분한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다. 필자가 알고 있으면서 신뢰하는 기후 과학자 모두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파괴라는 미래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필자가 아는 기후 과학자 대부분 자녀가 있다. 사실, 아이를 여러 명 둔 이들이 많다. 어린 자녀를 둔 이들도 있다. 이제 자녀 유무가 이성적인 판단을 위한 자동 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자녀가 있다는 사실은 기후변화를 진행한 이들은 자녀 세대가 누릴 미래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점을 낙관적으로 본다.
이 때문에 필자는 오늘날 대다수 젊은 세대가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경계한다.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탓에 자녀 계획을 포기한다. 이처럼 비관적인 정신은 설문 조사 데이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계산할 수 있는 바이다. 현재 20대인 필자는 친구들에게서 기후변화 때문에 이어질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 이야기를 항상 듣고는 한다. 미래의 아이를 매우 절망적인 길이 펼쳐진 세계에 살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딜레마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문제이다.
기후변화의 결과로 세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사고를 나타내는 가장 최근의 경계할 만한 사례는 독일 총리 선거 전 젊은 사회운동가 집단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자칭 ‘마지막 세대’인 해당 운동가 집단은 한 달 가까이 단식 투쟁을 했다. 결국 투쟁에 참여한 일부 운동가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어느 한 운동가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앞으로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운동가는 어느 한 기자에게 단식은 “기후변화 때문에 20년 뒤 유럽에 기근 문제가 들이닥칠 때 발생하리라 예측할 수 있는 문제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필자는 기후변화의 결과로 유럽에 기근이 발생하리라는 주장의 근거를 이해할 수 없다. 과학계에서 등장한 주장이 아니다. 기근 관련 발언은 그 어떤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가 제기한 주장도 아니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세계 최빈국을 중심으로 일부 국가에는 농업 피해가 중대한 우려 원인이 된다. 바로 필자가 시간을 들여 기후변화 연구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기후가 온화한 유럽 전역에 기근 문제가 발생한다니? 그것도 20년 이내에 기근 문제가 발생한다니, 뒷받침할 근거는 무엇인가?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 때문에 기후변화 때문에 세계 파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대규모 플랫폼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홍보하는 이들을 찾아서는 안 된다.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의 창립자인 로저 할람(Roger Hallam)의 예시를 이야기해보자. 할람의 최신 영상 중 하나인 ‘멸종 위기를 직면한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Advice to Young People as They Face Annihilation)’이라는 영상에서 할람은 인류가 단 몇 개월 이내에 배출량을 0으로 달성해야 하며, 이를 성공하지 못하면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멸종이 현재 다가왔다고 주장한다. 할람의 메시지 중 최악의 메시지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대신 현재 인류가 대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거짓 상황을 전달한다. 지금은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할람을 극단주의자로 치부할 수 있으나 할람은 세계 최대 환경 운동 창시자이기도 하다. 할람의 이름과 전제에 따라 결정된 운동은 인간이 전체 멸망의 길로 향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주장이지만, 과학계는 이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기후변화 목표와 시작 간의 잘못된 소통 문제이다. 지구 온도 상승 수준을 1.5℃로 줄인다는 목표는 파리협정 협의 당시 작성된 내용이다. 당시 온도가 2℃ 상승하면, 특히 저지대 도서 국가를 중심으로 일부 지역사회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 기후변화를 위해 더 야심 찬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파리협정 당시 인류가 1.5℃라는 목표를 실제로 달성할 확률은 지금보다 더 낮았다. 계획 당시 가능성이 있는 듯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사라졌다. 문제는 대부분 1.5℃라는 목표를 기후변화 문제 해결 시작의 전환점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한 번 목표를 달성하면 모든 노력이 끝을 맺는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기온 상승 수준 1.5℃라는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가장 높은 시점이 수십 년 이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많은 이들이 지금 기후변화 문제를 퇴치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셋째,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갱신은 최신 재앙 관련 일련의 뉴스가 인류에게 쏟아질 것을 의미한다. 재앙 관련 뉴스는 중요하지만, 빈번히 발생하는 재앙과 재앙의 여파가 가져올 전반적인 변화에 대한 정확한 관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사실, 많은 뉴스가 거짓된 관점을 전달한다. 실제 데이터 분석 결과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다르다. 자연재해 사망률은 지난 100년간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기후변화가 자연재해의 심각성에 일절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보다 자연재해 회복성이 강해진 덕분이다. 인류는 폭풍과 산불, 홍수를 예측할 더 첨단화된 기술을 보유했다. 또, 인간을 보호할 기반 시설도 갖추었다. 그리고, 자연재해가 강타할 때, 협력과 피해 복구를 할 수 있는 네트워크도 있다. 여러 자연재해 발생 뉴스와 함께 인간은 재빨리 실제와 반대되는 결론을 내린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재해 사망자 수가 증가한다는 잘못된 결과이다. 일부 언론은 자연재해 기사 보도 빈도를 기후변화 노력 진전의 지표로 사용한다. 일례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3시간 단위로 기후 관련 기사를 새로이 보도한다. 3시간 단위의 속도로 대다수 기사가 가장 최근의 재앙을 보도한다. 우려를 자극하는 뉴스 보도이다.
지금까지 속도가 느리면서 부적절한 기후 관련 여러 메시지를 결합하면, 많은 이들이 인류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관적인 사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정신건강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인간은 기후변화가 불러일으킬 정신건강의 대가를 저하해서는 안 된다. 필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적이 있다. 공허한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비명소리를 듣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아이들에게 기후변화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기후변화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말하는 것은 끔찍할 뿐만 아니라 상당수 사례에서는 진실이 아니다.
둘째, 인류의 멸망이라는 상황은 기후 회의주의자가 피해가 되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외치는 주장이다. 세계가 10년 이내로 멸망하지 않는다면, 기후과학의 모든 분야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실과 달리 인류 멸망이라는 메시지가 과학계의 메시지라고 추측한 탓에 과학계의 명성이 실추되었다. 대중의 과학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이는 인류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동을 멈추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기후변화가 인류 멸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고가 변화를 이끈다는 주장에 회의적이다. 종종 기후변화 대응 노력 무엇이든 결실이 없다고 느끼기 쉽다. 항상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기 너무 늦었다고 느낀다. 단기적으로는 분노가 행동의 시작에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실제 진전을 거두기 위해 대가를 분명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변화가 절망적이라는 분노를 느낀다면, 많은 부분의 진전을 거두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절망감이 현실 부정보다는 낫다.
기후변화를 낙관해야 한다는 징조가 있는가? 필자는 매력적인 표현으로 포장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인류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목표 달성은 아직 멀었다. 인류의 문제 해결 진전 속도는 너무 느리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변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정치계의 대응은 느리지만, 기술적 변화는 느리지 많다. 많은 국가가 석탄 사용 중단을 위한 효과적인 변화를 보였다. 재생에너지 가격도 빠른 속도로 인하하는 추세이다. 태양열 가격은 10년 전보다 89% 감소했다. 해양 풍력 자원 비용도 70% 감소했다. 태양열과 풍력 자원 모두 석탄, 가스보다 저렴하다. 재생에너지가 화석 연료 가격보다 더 저렴해지는 변화를 위해 수많은 에너지 저장 시설이 필요하다. 희소식이 있다면, 인류가 에너지 저장 시설도 풍부하게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배터리 비용은 지난 30년간 97% 인하했다. 1990년대, 테슬라 차량 배터리 가격은 50만 파운드를 넘었다. 그러나 현재 차량 배터리 가격은 1만 3,000달러이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전기차로 전환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전기차 전환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대응이 너무 느리면서 저탄소 기술이 화석 연료 대기업의 로비에 맞서 발전한 사실 때문에 비관적인 견해를 지닌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필자는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현실적인 정치적, 재정적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진전을 거둘 수 있다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역풍에 맞서기 보다는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인류에게는 기후변화 대응 메시지가 필요하다. 낙관주의를 통해 한 가지 기후변화 행동을 견인하는 요소는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이다. 혹은 상황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징조와 함께 낙관주의를 현실주의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변화를 이끄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또, 인류는 기후변화 과정에서 정신적인 분노를 줄일 수 있다. 중요하면서도 실제 변화가 사실이 되도록 만드는 데 중요하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Stop Telling Kids They’ll Die From Climate Change
기후변화가 인류의 최대 위협 요소인가?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변할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기후변화에 절망적으로 느낄 것이다. 최근 공개된 어느 한 설문 조사는 전 세계 10개국의 16~25세 인구 1만 명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해 설명하라는 요청을 했다. 결과는 매우 절망적이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인류의 운명이 절망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3/4은 미래가 두렵다고 말했다. 55%는 “부모 세대보다 얻는 기회가 적을 것”이라고, 52%는 가정의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39%는 기후변화 위기 때문에 미래에 자녀를 출산하는 것을 꺼린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의 기후변화 관련 절망적인 태도는 부유국과 빈곤국,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 똑같았다. 미국과 영국부터 브라질과 필리핀, 인도, 나이지리아 등 어느 국가나 젊은 세대의 기후변화에 관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 세대가 기후변화에 대해 절망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타당하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필자의 작업 상당 부분이 기후변화 문제 연구와 글 작성, 관련 문제 생각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필자가 답을 찾기를 거의 포기한 부분이다. 최근 환경 과학과 기후변화 학위를 받고 대학을 졸업한 필자는 기후변화 문제에 이바지할 부분을 찾기 매우 어려웠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필자의 태도는 분노에서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어떠한 노력도 결실이 없는 듯하여 필자는 기후변화 개선 노력을 중단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필자의 견해가 바뀌었다. 필자가 기후변화 연구를 한 사실이 기쁘다. 단순히 기후 관련 일을 계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사고방식을 고수했다면, 필자가 그동안 진행한 연구가 여러 차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덕분이다. 이 덕분에 필자는 인류가 기후 문제를 두고 진전을 거두고자 한다면, 비관주의적인 태도를 떨쳐내야 한다.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 기후변화와 함께 수많은 위험 요소가 등장한다. 일부 확실한 문제도 있고, 불확실한 문제도 있으며, 인류는 배출량 감축이라는 결과를 얻기 충분한 수준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다. 필자가 알고 있으면서 신뢰하는 기후 과학자 모두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파괴라는 미래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필자가 아는 기후 과학자 대부분 자녀가 있다. 사실, 아이를 여러 명 둔 이들이 많다. 어린 자녀를 둔 이들도 있다. 이제 자녀 유무가 이성적인 판단을 위한 자동 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자녀가 있다는 사실은 기후변화를 진행한 이들은 자녀 세대가 누릴 미래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점을 낙관적으로 본다.
이 때문에 필자는 오늘날 대다수 젊은 세대가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경계한다.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탓에 자녀 계획을 포기한다. 이처럼 비관적인 정신은 설문 조사 데이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계산할 수 있는 바이다. 현재 20대인 필자는 친구들에게서 기후변화 때문에 이어질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 이야기를 항상 듣고는 한다. 미래의 아이를 매우 절망적인 길이 펼쳐진 세계에 살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딜레마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문제이다.
기후변화의 결과로 세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사고를 나타내는 가장 최근의 경계할 만한 사례는 독일 총리 선거 전 젊은 사회운동가 집단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자칭 ‘마지막 세대’인 해당 운동가 집단은 한 달 가까이 단식 투쟁을 했다. 결국 투쟁에 참여한 일부 운동가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어느 한 운동가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앞으로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운동가는 어느 한 기자에게 단식은 “기후변화 때문에 20년 뒤 유럽에 기근 문제가 들이닥칠 때 발생하리라 예측할 수 있는 문제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필자는 기후변화의 결과로 유럽에 기근이 발생하리라는 주장의 근거를 이해할 수 없다. 과학계에서 등장한 주장이 아니다. 기근 관련 발언은 그 어떤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가 제기한 주장도 아니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세계 최빈국을 중심으로 일부 국가에는 농업 피해가 중대한 우려 원인이 된다. 바로 필자가 시간을 들여 기후변화 연구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기후가 온화한 유럽 전역에 기근 문제가 발생한다니? 그것도 20년 이내에 기근 문제가 발생한다니, 뒷받침할 근거는 무엇인가?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 때문에 기후변화 때문에 세계 파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대규모 플랫폼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홍보하는 이들을 찾아서는 안 된다.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의 창립자인 로저 할람(Roger Hallam)의 예시를 이야기해보자. 할람의 최신 영상 중 하나인 ‘멸종 위기를 직면한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Advice to Young People as They Face Annihilation)’이라는 영상에서 할람은 인류가 단 몇 개월 이내에 배출량을 0으로 달성해야 하며, 이를 성공하지 못하면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멸종이 현재 다가왔다고 주장한다. 할람의 메시지 중 최악의 메시지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대신 현재 인류가 대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거짓 상황을 전달한다. 지금은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할람을 극단주의자로 치부할 수 있으나 할람은 세계 최대 환경 운동 창시자이기도 하다. 할람의 이름과 전제에 따라 결정된 운동은 인간이 전체 멸망의 길로 향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주장이지만, 과학계는 이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기후변화 목표와 시작 간의 잘못된 소통 문제이다. 지구 온도 상승 수준을 1.5℃로 줄인다는 목표는 파리협정 협의 당시 작성된 내용이다. 당시 온도가 2℃ 상승하면, 특히 저지대 도서 국가를 중심으로 일부 지역사회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 기후변화를 위해 더 야심 찬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파리협정 당시 인류가 1.5℃라는 목표를 실제로 달성할 확률은 지금보다 더 낮았다. 계획 당시 가능성이 있는 듯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사라졌다. 문제는 대부분 1.5℃라는 목표를 기후변화 문제 해결 시작의 전환점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한 번 목표를 달성하면 모든 노력이 끝을 맺는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기온 상승 수준 1.5℃라는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가장 높은 시점이 수십 년 이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많은 이들이 지금 기후변화 문제를 퇴치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셋째,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갱신은 최신 재앙 관련 일련의 뉴스가 인류에게 쏟아질 것을 의미한다. 재앙 관련 뉴스는 중요하지만, 빈번히 발생하는 재앙과 재앙의 여파가 가져올 전반적인 변화에 대한 정확한 관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사실, 많은 뉴스가 거짓된 관점을 전달한다. 실제 데이터 분석 결과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다르다. 자연재해 사망률은 지난 100년간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기후변화가 자연재해의 심각성에 일절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보다 자연재해 회복성이 강해진 덕분이다. 인류는 폭풍과 산불, 홍수를 예측할 더 첨단화된 기술을 보유했다. 또, 인간을 보호할 기반 시설도 갖추었다. 그리고, 자연재해가 강타할 때, 협력과 피해 복구를 할 수 있는 네트워크도 있다. 여러 자연재해 발생 뉴스와 함께 인간은 재빨리 실제와 반대되는 결론을 내린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재해 사망자 수가 증가한다는 잘못된 결과이다. 일부 언론은 자연재해 기사 보도 빈도를 기후변화 노력 진전의 지표로 사용한다. 일례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3시간 단위로 기후 관련 기사를 새로이 보도한다. 3시간 단위의 속도로 대다수 기사가 가장 최근의 재앙을 보도한다. 우려를 자극하는 뉴스 보도이다.
지금까지 속도가 느리면서 부적절한 기후 관련 여러 메시지를 결합하면, 많은 이들이 인류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관적인 사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정신건강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인간은 기후변화가 불러일으킬 정신건강의 대가를 저하해서는 안 된다. 필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적이 있다. 공허한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비명소리를 듣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아이들에게 기후변화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기후변화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말하는 것은 끔찍할 뿐만 아니라 상당수 사례에서는 진실이 아니다.
둘째, 인류의 멸망이라는 상황은 기후 회의주의자가 피해가 되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외치는 주장이다. 세계가 10년 이내로 멸망하지 않는다면, 기후과학의 모든 분야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실과 달리 인류 멸망이라는 메시지가 과학계의 메시지라고 추측한 탓에 과학계의 명성이 실추되었다. 대중의 과학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이는 인류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동을 멈추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기후변화가 인류 멸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고가 변화를 이끈다는 주장에 회의적이다. 종종 기후변화 대응 노력 무엇이든 결실이 없다고 느끼기 쉽다. 항상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기 너무 늦었다고 느낀다. 단기적으로는 분노가 행동의 시작에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실제 진전을 거두기 위해 대가를 분명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변화가 절망적이라는 분노를 느낀다면, 많은 부분의 진전을 거두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절망감이 현실 부정보다는 낫다.
기후변화를 낙관해야 한다는 징조가 있는가? 필자는 매력적인 표현으로 포장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인류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목표 달성은 아직 멀었다. 인류의 문제 해결 진전 속도는 너무 느리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변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정치계의 대응은 느리지만, 기술적 변화는 느리지 많다. 많은 국가가 석탄 사용 중단을 위한 효과적인 변화를 보였다. 재생에너지 가격도 빠른 속도로 인하하는 추세이다. 태양열 가격은 10년 전보다 89% 감소했다. 해양 풍력 자원 비용도 70% 감소했다. 태양열과 풍력 자원 모두 석탄, 가스보다 저렴하다. 재생에너지가 화석 연료 가격보다 더 저렴해지는 변화를 위해 수많은 에너지 저장 시설이 필요하다. 희소식이 있다면, 인류가 에너지 저장 시설도 풍부하게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배터리 비용은 지난 30년간 97% 인하했다. 1990년대, 테슬라 차량 배터리 가격은 50만 파운드를 넘었다. 그러나 현재 차량 배터리 가격은 1만 3,000달러이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전기차로 전환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전기차 전환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대응이 너무 느리면서 저탄소 기술이 화석 연료 대기업의 로비에 맞서 발전한 사실 때문에 비관적인 견해를 지닌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필자는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현실적인 정치적, 재정적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진전을 거둘 수 있다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역풍에 맞서기 보다는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인류에게는 기후변화 대응 메시지가 필요하다. 낙관주의를 통해 한 가지 기후변화 행동을 견인하는 요소는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이다. 혹은 상황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징조와 함께 낙관주의를 현실주의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변화를 이끄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또, 인류는 기후변화 과정에서 정신적인 분노를 줄일 수 있다. 중요하면서도 실제 변화가 사실이 되도록 만드는 데 중요하다.
** 위 기사는 와이어드UK(WIRED.co.uk)에 게재된 것을 와이어드코리아(WIRED.kr)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 고다솔 에디터)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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