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사이트의 음란물에 대한 자동차단 체계 구축과 디지털 범죄에 대한 무관용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본인 동의 없이 전 미국 하원 의원 케이티 힐의 누드 이미지가 유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한 우익 타블로이드 매체가 지난 10월 페이스북 및 트위터에 클릭 유도를 목적으로 힐의 사진을 게재하면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선정적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레드 스테이트(RedState)와 데일리 메일(DailyMail.com) 매체는 두 부하 직원과 힐 간의 염문설과 함께 이혼 절차 중인 그녀와 두 선거운동원 간의 사진을 무단 공개했다. 힐은 하원 윤리위원회 조사 직후 의원직에서 사임했다. 그런데 데일리메일은 지난 10월 24일 알몸에 힐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 4장을 다시 공유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운영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힐이 내용 게재 취소 요청을 했더라도 때는 너무 늦었다. 사진들은 SNS망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끊이지 않는 디지털성범죄, 필터링-신속 구제-처벌 강화해야
페이스북은 2017년부터 당사자 동의없이 게재된 사진ㆍ영상(일명 nonconsensual porn)을 제거하고자 시스템을 강화해 왔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데일리메일이 케이티 힐의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페이스북이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기사에 대해서는 관용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레드스테이트와 데일리메일 매체는 힐의 사진 공개를 공공의 알권리와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할 것이고, 힐의 거주지인 캘리포니아 주와 의회가 위치한 워싱턴 DC 법은 모두 공익을 위한 보도는 면책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페이스북의 행동은 여성이 느낄 수치심과 가해자의 디지털 성범죄 행위를 방치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페이스북에 힐의 사진이 처음 게재되는 단계에서 자동차단 필터링됐어야 마땅할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8일 미국 NBC 등 외신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AI를 통해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 차단에 나섰음에도 매일 1만6000건 이상의 리벤지 포르노가 유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은 이미지를 식별하기 위한 해시(Hash)로 불리는 디지털 지문 도입과 25명이 팀을 구성해 차단 프로그램을 통한 검수에 나서고 있지만 포르노 유포를 막기에는 부족한 모습이다.
한국에서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조치될까. 한국은 음란물 차단을 위한 필터링 조치가 법제화(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 3)돼 있다. 주요내용은 ①불법음란정보를 인식(제목, 특징 등)할 수 있는 조치 ②불법음란정보의 검색 및 송수신을 제한하는 조치 ③상기 조치에도 불구하고 불법음란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 검색 및 송수신을 제한하는 조치 ④불법음란정보 전송자에게 유통금지 등의 경고문구를 발송하는 조치 등이다.
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에 따르면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해당 사항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포함한 모든 정보통신망을 이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준수해야할 규정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유저를 보유한 네이버 역시 자체적으로 개발한 음란물 필터링을 적용하고 있다. 네이버 발표에 따르면, 음란물 AI(인공지능) 필터링 엑스아이(X-eye)를 통한 음란물 탐지 비율은 98%에 달한다고 한다. 엑스아이의 작동원리는 AI가 일정 구간마다 프레임을 추출해 음란물지수가 높을 경우 '재생중지' 상태로 변환시키는 방식이다. 이후 재생중지된 영상에 대한 검수자 검토를 거쳐 '삭제 및 이용제한' 또는 '정상' 판정이 내려진다. 이미지 경우에는 '컨볼루션'을 택하고 있다. 네모난 돋보기가 그림을 살피듯 훑어보면서 특징을 찾아내 음란물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네이버 측은 "AI가 학습을 통해 진화하면서 일부 감지못하는 음란이미지 역시 추출하게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중심 지원체계 필요
힐 전 의원과 같은 피해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신속하게 피해 사항을 차단하고 구제하느냐에 있다. 지난 11월 12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여성가족부, 경찰청이 공동으로 '디지털 성범죄 공동대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물 유통 방지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원스톱(One-Stop) 서비스 제공으로 피해자들에게 더욱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가능해졌다"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에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또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청과 각 지방청에 사이버 성폭력수사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민 청장은 "검거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지원도 중요한 만큼 자체 운영 중인 '불법촬영물 추적시스템' 정보와 운영기법을 관련 부처와 공유해 공공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DNA DB)를 구축하고 필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성범죄물의 유통 방지와 더불어 피해자 보호책도 강화된다. 방심위는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 내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하고 디지털성범죄 영상물 정보에 대해 각 기관으로부터 상시 삭제·차단 요청을 접수받아 즉각 심의에 나설 방침이다. 또 내년부터 지원센터의 '(가칭)삭제지원시스템'을 통해 삭제 심의신청이 가능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방심위 일반 민원창구를 통해야 하는 불편이 따랐다.
이미지 기반 성폭력(IBA, Image-based Sexual Abuse)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정립한 클레어 맥글린(Clare McGlynn) 영국 더럼대학교 교수는 지난 15일 열린 여성가족부 주최 디지털성범죄 대응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해 “이미지 기반 성폭력에 대응하는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며, 형사법 통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중심의 지원체계를 위해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